쿠티 로메로,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역사적 갈등 속에서도 아틀레티코 입성
Marca
José Luis Hurtado
08. 18. 05:11 KST
AI 핵심 요약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새로운 영입 선수로 거론되는 쿠티 로메로에 대한 기사입니다.
- 기사는 1982년 말비나스 전쟁 당시 토트넘 소속이던 오시 아르딜레스가 겪었던 고초와 현재 쿠티 로메로의 상황을 비교합니다.
-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말비나스 관련 현수막 사건과 함께, 축구와 정치적 민감성이 얽힌 과거와 현재를 조명합니다.

사진 출처: Marca, José Luis Hurtado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의 관중석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마치 하얀 천 조각 같았다. 아래에서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잉글랜드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둔 기쁨을 클럽처럼 축하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인 로 셀소는 그것을 집어 들었고, 펼치니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의 것'이라고 쓰인 현수막이었다. 또다시 정치, 감정, 열정, 그리고 골이 뒤섞인 것이 잔디밭 위를 돌아다녔고, 그 맞은편에는 영토 라이벌인 잉글랜드가 있었다. 1982년부터 이어진 꼬리가 긴 이야기다. 그 당시 아르딜레스의 경력에 개입했다. 아틀레티코의 새로운 영입 선수인 쿠티 로메로는 같은 일을 겪지 않을 것이다.
아르딜레스는 82년에 토트넘 유니폼을 입었다. 쿠티는 지금까지도 그것을 입고 있었다. 둘 사이에는 잉글랜드 축구에서 말비나스를 안고 살아가는 지뢰가 있었다. 월드컵에서의 충돌은 다시 한번 독이 든 접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르헨티나 중앙 수비수인 그는 '스퍼스' 수비의 대장이었다. 애틀랜타에서는 현수막 근처에 마치 상대 팀의 돌격수처럼 서 있던 선수들 중 하나였다. 82년, 아르딜레스는 선수 이상의 존재였다. 그는 자신을 숭배하는 팬들의 안식처였다.
78년 월드컵 우승자이자, 축구와 투지로 무장한 지칠 줄 모르는 미드필더였던 오스발도 '오시' 아르딜레스(코르도바, 1952)는 월드컵 우승 후 우라칸에서 잉글랜드 리그로 이적했다. 그의 삶은 영화 같았다. 단순히 펠레와 함께 존 휴스턴 감독의 명작 '승리의 탈출'(1981)에 출연한 것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그는 스탤론과 함께 칠레 골을 터뜨리며 나치 지도자들에게 도전했다.
잉글랜드로의 여정에는 78년 월드컵 우승자이자 공격형 미드필더인 리카르도 빌라가 동행했다. 이 두 선수와 함께 토트넘은 1981년 FA컵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꺾고 우승했다. 재경기(3-2)에서는 빌라가 웸블리에서 '세기의 골'이라고 불린 골을 넣었다. 그들은 이미 우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말비나스는 분명히 나를 파괴했다. 잘 정돈된 내 삶에 터진 폭탄이었다.'
1982년 4월 2일,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군사 정권이 통치하던 아르헨티나가 1833년부터 영유권을 주장해 온 영국의 영토인 말비나스 제도를 공격했다. 이 섬들은 아르딜레스가 누리던 평온을 산산조각 냈다.
아르헨티나의 공격 하루 뒤, 토트넘은 레스터와 컵 경기를 치렀다. 레스터 팬들은 애국심이라는 명목으로 아르헨티나 선수에게 야유를 보냈고, '잉글랜드, 잉글랜드'라는 외침이 아르딜레스를 뒤덮었다. 하지만 클럽 팬들은 '오시'에 대한 충성심을 잃지 않았고,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는 함성으로 야유에 맞섰다.
자신의 팀으로부터 받은 사랑에도 불구하고, 미드필더는 충격을 받고 아르헨티나로 가서 스페인 월드컵을 준비하던 메노티의 대표팀에 합류했다.
무력 충돌에 대한 그의 관심과 그 진행 상황을 보면서, 아르딜레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는 잉글랜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 군인들과 함께 있다." 영국-아르헨티나 전쟁은 스페인 월드컵의 분위기를 해칠 것이었다. 항상 가십거리를 쫓는 영국 대중지는 아르딜레스가 아르헨티나 전투원이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상상력이 지배했다.
분열은 영국 의회까지 번졌고, 심지어 월드컵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를 퇴출시켜야 할지에 대한 논의까지 이루어졌다. FIFA와 월드컵 조직위는 외교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었다.
한편 아르헨티나에서도 열기는 뜨거웠다. 아르헨티나 경기장에서는 경기 전에 국가가 울려 퍼졌다. 흥미롭게도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는 포르투갈에서 열린 롤러 스케이트 하키 월드컵에서 만났다. 양측 선수들은 악수도 거부했다. 롤러 스케이트 하키의 강국인 아르헨티나는 경쟁자들을 (8-0)으로 압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르딜레스에게 전쟁은 비극적인 가족적 결과를 초래했다. 축구 선수인 호세 레오니다스 아르딜레스 대위는 아르헨티나 공군 조종사였다. 82년 5월 1일, 27세의 호세 아르딜레스는 미라주 M5P 전투기 편대에 합류하여 임무를 시작했다.
영국 공군의 씨 해리어 전투기 정찰대에 의해 탐지된 아르딜레스는 주변 항공기들로부터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영국 항공기 중 하나가 발사한 미사일이 아르딜레스의 전투기를 명중시키면서 모험은 비극으로 끝났다. 미라주 전투기는 공중에서 폭발했다. 법으로 국가 영웅으로 지정된 호세 레오니다스 아르딜레스의 시신은 결코 수습되지 못했다.
이것은 아르딜레스가 잉글랜드 복귀를 망설이게 하는 또 다른 장애물이었다. 한편, 토트넘은 아르딜레스와 빌라 없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를 (1-0)으로 꺾고 82년 FA컵을 우승했다. 빌라는 그 경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선호했다.
"말비나스는 분명히 나를 파괴했다. 잘 정돈된 내 삶에 터진 폭탄이었다."라고 아르딜레스는 인정했다. '자신'의 두 나라가 멈추지 않고 싸우는 것을 보며 그는 세상에 발붙일 곳을 잃었다. 잉글랜드는 군사적 우위를 점했고, 649명의 아르헨티나 사상자와 255명의 영국 사상자를 낸 74일간의 싸움 끝에 6월 14일 아르헨티나가 항복을 선언했다. 말비나스는 다시 영국의 것이 되었다. 전쟁의 끔찍한 결과는 아르헨티나 측 649명, 영국 측 255명의 사망자를 냈다.
아르딜레스는 마라도나와 켐페스를 상징으로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에게는 비극적인 전개가 될 스페인 월드컵을 맞이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조 추첨 결과는 전쟁 중인 두 나라가 결승전에서만 만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어떤 팀도 결승전에 도달하지 못했다. 대회 후, 그는 PSG로 임대되었고, 그곳에서 스스로 인정하듯 형편없는 활약을 보였다.
83년 1월, 예정보다 일찍 아르딜레스는 파리를 떠나 토트넘으로 복귀했다. "잉글랜드에서 다시 뛰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축구가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라고 말했다.
쿠티 로메로에게는 말비나스의 망령 없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 프리미어 리그에는 여전히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상징인 디부 마르티네스(애스턴 빌라), 엔조 페르난데스(첼시), 맥 알리스터(리버풀), 리산드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이 뛰고 있다.
아르딜레스는 토트넘의 공식 앰버서더로 활동하며, 새로운 영입 선수인 아르헨티나의 세네시를 환영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축구가 현수막을 이길지 지켜볼 일이다.
